KMJ ART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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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코리아글로벌아트협회 신진청년작가 초대개인전
물건의 윤곽선은 얇은 천을 보호해
The Outlines that protect the softness beneath
11.01(토) ~ 11.06(목)
인천광역시 남동구 인주대로 543 KMJARTGALLERY 3관 지하1층
김수정 - 물건의 윤곽선은 얇은 천을 보호해
자꾸만 보고 싶은 장면이 있다. 누군가 한참을 만지작거렸을 손때묻은 장난감, 꼬깃한 쪽지, 수놓은 낙서들. 연약하고 아무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금세 바스라지고 잃어버리게 될 장면들. 하지만 어떤 진실을 말해주는 아주 구체적인 장면. 아무에게나 가방 속을 열어 보여주지는 않는 거니까, 나는 운이 좋은 민족지학자가 된 것처럼 가까이 들여다보고 빼곡히 받아 적었다. 그곳은 온갖 곳에 흩어져 산다고 알려진 동물들이 하나의 각도로 구부러지고, 구름을 동그랗게 뭉쳐 노란 오리를 구워내는 곳이었다. 축하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축하하고(이를테면 세계 펭귄의 날 같은), 사랑하고 미워하며, 지겹고 진득하게 살을 부대끼며 사는 곳이었다. 여기에 삶이 있음을 알고, 가방 속 풍경을 그리게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가방이 그림이 되자, 설명할 말이 필요했다. 내가 담는 행위에 얼마나 흥미가 있고, 다이소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 파우치나, 각종 플라스틱 용기, 찻잔을 구경하는지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세계 끝의 버섯(송이버섯을 매개로 인간·비인간·자본의 얽힘을 비선형적 서사로 펼쳐 보이는 민족지다.)』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 책의 503쪽을 펴보면 어슐러 K. 르귄의 산문, 「소설의 운반 가방 이론」의 일부가 담겨있다. 르귄은 이야기의 기원을 영웅이 아니라 무언가를 담고 운반하는 그릇이나 가방으로 보았다. 그는 “만약 유용하거나, 먹을 수 있거나, 아름답다는 이유로 원하는 어떤 물건을 가방이나 바구니나 우묵한 나무껍질이나 잎사귀나 머리카락으로 짠 그물이나 뭐든 가진 수단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가는 게 인간이라면 (⋯) 그렇다면 나는 결국 인간이다. 완전하게, 자유롭게, 기쁘게, 태어나서 처음으로.”라고 쓴다. 인간이 담는 존재이고 이야기가 가방이 된다면, 내 그림도 가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르귄의 말에 설득당하는 건, 내가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에 비하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맞물릴 때 어떤 의미가 생길 수 있을까? 나는 권위있는 르귄의 말과 나의 생활밀착형 그림이 교차되어 읽히길 바랐다. 그래서 그 에세이의 몇 구절을 따와 제목을 지었고, 안타깝게도 ‘잠시 동안 도롱뇽을 구경했고(2025)’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도롱뇽은 못 찾는다. 대신 감상자의 마음 속 도롱뇽에게 말을 걸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가 전시장 밖으로 걸어나가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더 많은 이야기로 이끌어준다면, 처음 만난 누군가의 가방 속을 열어 재껴서 도롱뇽을 기필코 찾아내는 난잡함으로 이끌어준다면. 난잡함(promiscuity)이란 단어는 듣기에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돌봄(care)과 함께 쓰이며 제도 바깥에서 비정형적으로 엉켜 있는 퀴어 커뮤니티의 열린 공동체성과 돌봄의 윤리를 역설하는 말로 쓰인다. 삼촌이 내 그림을 보고선 정리 좀 해라 너저분한 풍경이라고 던진 농담은 핵심을 관통한다. 나는 중심 없이 펼쳐진 그림 위에서 모두가 한껏 취약해지길 바랐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꺼내 보이고, 뒤늦게 움켜쥐었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알 같은 관계들과, 그럼에도 우리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떠들어대며, 기왕이면 사람들이 서로 돌보길 바랐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서, ‘물건의 윤곽선은 얇은 천을 보호해’가 무슨 말이냐면, 이것도 내게서 나온 말은 아니다. 배시은 시인의 ‘소공포’라는 시집에 수록된 시인데, 솔직히 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은 오랫동안 명확하게 이해되지 못한 채 잔상에 남아 다른 층위로 미끄러졌다. 윤곽선은 내가 좋아하는, 아직 머리와 손이 잘 조응되지 않는 8살 어린이가 기역니은을 쓰기 전에 무수히 그어보는 선의 모양이 되었고, 얇은 천은 사적이고 내밀한 미술사적 메타포가 되었으며, 선이 얇은 천을 꿰뚫거나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보호한다는 지점에서 느껴지는 상충되는 감각은 돌봄의 양가적인 속성을 말해주는 문장으로 읽혔다. 다른 사람에게는 또 그만의 문장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작가노트를 통해 행간에 위치한, 촘촘히 얽힌 관계 속의 나를 드러내려고 했고, 그 목표가 달성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든 목표가 실패하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 가장 따뜻한 시선을 나누고자 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그림이란 건 결국 관심을 기울이는 방식이 아닐까. 캔버스 앞을 째려보고 있던 시간과 그 바깥이 시간이 불확정적으로 마주치는 순간을 목격하셨습니다. 돌봄, 관계, 수집과 보존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김수정 작가의 작품(전시장에 더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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